담담한 아이의 이야기이지만, 오히려 읽는이의 마음이 휘몰아진다.
문장들
흐릿해지는 때가 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글자는 글자를 넘어서고, 단어는 단어를 넘어선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외계어처럼 들린다. 그럴 때면, 내가 헤아리기 힘든 사랑이니 영원이니 하는 것들이 오히려 가까이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나는 이 재밌는 놀이를 엄마에게 소개했다. 그러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뭐든 여러 번 반복하면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처음엔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 더 지난 뒤엔 변하거나 퇴색되는 것처럼 보이지. 그러다 결국 의미가 사라져 버린단다. 하얗게.
조롱 섞인 언어로 재단된 것에 분노했다.
남들은 다 본 영화를 나만 못 보고 있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서요. 못 보고 살아도 상관없지만 본다면 다른 사람들과 얘기 나눌 거리가 조금쯤은 많아지겠죠.
생각들
생각해보면 어린시절 나 주위에도 곤이같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과 반대였던 타입이라 친해질만한 일이 많지는 않았다. 어쩌다 그 친구들과 짝궁이 되어보면서 항상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람은 모두 순하고 착한 구석이 있다. 조금 달라 보인다거나 거슬리게 행동한다면 그 친구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런것이 아닐까 생각한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였다. 반에서 사고뭉치 친구와 짝이 된것이 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아주 상냥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무례하게 구는 친구는 아니였다. 오히려 가끔은 친절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수업 중 담임선생님은 갑자기 달려와 그 친구의 뼘을 때리며 넌 정말 못됐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그 순간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순식간에 그 일이 일어났고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그 친구는 잘못한 것이 없았다. 바로 옆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내가 보았을때 그 아이는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조용히 방해하지 않고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 일이 일어나고 그 친구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상처받은 고양이 같은 표정이였다. 아무도 그를 보호하지 못했다. 아직도 그 친구의 편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내가 그때 그 친구의 편을 들어주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런 사건들이 겹치고 겹쳐져서 곤이가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자꾸 아이들에게 어른스러움을 강요한다. 그리고 어른스러운 아이에게는 아이다움을 강요한다. 그 사람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면 안될까? 이제 나도 어른이 되었다. 30대가 된 지금까지 나도 모르게 한 행동들의 결과들로 또 다른 곤이가 만들어 지진 않았을지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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